정의
1921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
개설
기능과 역할
1929년에는 대부분의 해륙운수 노동자 1,800여 명과 기공적 직업(技工的職業)에 종사하는 양복·양화·인쇄·이발공 등의 노동자 400여 명 등이 참여하면서 총 2,200여 명으로 늘어나, 원산의 전산업노동자를 장악하고 있었다.
조직체계를 보면, 산하에 장소와 직업에 따라 23개의 노동조합이 있었고, 각 조합 안에는 더 여러 개의 도중(都中), 즉 반(班)이 있었다. 연합회는 여러 개의 도중이 모여 한개의 노동조합이 되고, 또 노동조합 전부가 모여 연합회를 결성하는 삼단계의 조직체였다.
그런데 연합회는 소조직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조직체였을 뿐만 아니라, 지도부 또한 훌륭하였다. 위원장 김경식을 비롯하여 고문에 추대된 김두산(金頭山)은 독립운동지사였고, 상무진인 이영로(李永櫓)·원정상(元正常)·김대욱(金大郁)·이용상(李容尙)·이용우(李容愚)·이종민(李宗敏)·이봉(李峰)·이창열(李昌烈) 등도 사회적으로 쟁쟁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청렴결백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원산총파업 당시 일제가 경리장부를 압수하여 이를 탄압할 빌미를 찾았으나, 한푼의 부정도 찾아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사업으로는 ① 교육사업실시 ② 소비조합운영 ③ 노동병원 및 이발소설치 ④ 구제부를 설치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경제적 향상을 기하였다. 그리고 ① 조합원 선발에 엄선을 기하고 ② 조합원 모두에게 평균임금을 지불하고 ③ 단체협약을 체결, 임금인상 쟁취 등에 노력하였다.
1929년 1월 14일 상오 10시부터 시작된 산하 단위노조인 문평(文坪)제유공장 노동자들의 동맹파업을 시작으로 산하 다른 노조원까지 합세한 가운데 원산시의 노동자 총파업으로 발전된 원산총파업을 주도하였다. →원산총파업
참고문헌
- 『한국노동운동사(韓國勞動運動史) Ⅰ-일제하편(日帝下篇)-』(김윤환, 청사, 1981)
- 『한국노동조합운동사』(한국노동조합총연맹,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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