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2월아관(俄館)에서 경운궁(慶運宮)으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해 자강(自强)을 꾀하는 동시에 근대적 개혁을 추진해 갔다. 이러한 자강의 의지를 바탕으로 1899년 군통수권을 장악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즉, 군통수권자인 황제가 대원수로서 모든 군기(軍機)를 총괄하고 육해군을 통령하며,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해군을 하나로 통솔하기 위해 황궁(皇宮) 안에 원수부를 둔 것이다.
원수부는 국방 · 용병(用兵) · 군사의 명령을 장악하고 군부(軍部)와 경외(京外) 각 대(隊)를 지휘, 감독하기 위해 원수부 안에 군무국(軍務局) · 검사국(檢査局) · 기록국 · 회계국을 두었다. 이들 각 국의 관장사무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군무국: 인보(印寶) · 상장(尙藏)에 관한 사항, 군사에 관한 조칙과 공문 발포 사항, 국방 · 용병, 평시 · 전시의 군대편성 사항, 전투준비와 군비지급 사항, 육해군대학교와 육해측량(陸海測量) 사항, 군부와 경외 각 대의 일기 · 보고서 접수 및 초록입주(抄錄入奏) 등,
② 검사국: 군사에 관한 상사(賞賜) · 승서(陞敍) · 천전(遷轉) · 징계와 각 병학교(兵學校)의 교육 사항 및 경외 각 대 소속장교의 근만(勤慢)을 심사하는 사항, ③ 기록국: 군사에 관한 조칙과 문부(文簿) · 도서 등의 보존에 관한 사항, ④ 회계국: 군사경비의 예결산과 회계 · 조사, 그리고 인가 · 퇴환(退還)에 관한 사항을 다루었다.
원수부의 각 국에는 장성급으로 임명되는 국장과 영관급으로 임명되는 부장(副長), 위관급으로 임명되는 국원이 있고, 그 밑에 부하사(附下士) 약간명이 있었으며, 1900년에는 국장의 명칭이 총장(總長)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원수부는 황제가 군부 위에서 직접 군령권을 장악함으로써 군주권(君主權)이 한층 강화되었다.
따라서, 과거 군부가 행사하던 군령권이 원수부로 넘어감에 따라 군대편성이나 충원계획 · 군사교육과 회계까지 원수부에서 관장하게 되어 자연 군부의 군무사(軍務司)는 폐지되었다. 이로써 군부는 군비의 관리, 각 관해(官廨)와 요새의 관리 등 일반 군사행정만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수부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에 의해, 1904년 9월 명목상의 관제로 되었는데, 그 해 말에는 원수부 자체가 폐지되면서 다시 모든 군령 · 군정권을 군부로 넘겨 황제권은 더욱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