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년(태종 2)에 원자 제(褆 : 양녕대군)를 위하여 성균관의 동북 모퉁이에 별도의 학당을 세우고 명칭을 경승부(敬承府)라 하였다.
관원으로는 좌·우유선(左右諭善)에 조서(趙敍)·김시용(金時用), 좌·우시학(左右侍學)에 이공의(李公義)·이양명(李陽明), 좌·우동시학(左右同侍學)에 김훈(金訓)·홍여방(洪汝方)을 임명하였고, 또 실무담당의 주부(注簿)를 두었다가 뒤에 부승(副丞)으로 고쳤다.
뒤에는 공신의 자제들을 시직(侍直)이라는 직함으로 원자부에 불러 같이 공부하게 하였다. 1408년 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서 원자부는 세자시강원으로 대체되었다. 그 뒤 오랫동안 원자가 없었고, 있을 때도 궁중에서 교육되었기 때문에 경승부는 폐지되었고 원자부라는 호칭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중종 이후에는 원자보양청(元子輔養廳)이, 인조 이후에는 강학청(講學廳)이 수시로 설치되어 원자의 보육과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 보양청과 강학청에는 2, 3인의 1·2품 보양관 또는 강학관이 임명되었고, 여러 명의 실무담당 이서(吏胥)와 사령(使令)들이 배속되어 원자부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