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정은 2품관 중에서 문명과 덕망이 있는 이를 조정에서 선발하여 원접사로 삼고 의주까지 가서 중국 사신을 마중하여 잔치를 베풀고, 선위사(宣慰使)를 도중 다섯 군데에 보내 설연(設宴), 위로하였다.
그런데 만일 도사가 사신을 따라 올 경우에는 따로 3품 당상관을 보내어 도사를 선위하였는데, 조선 중기 이후로는 도사가 따라오지 않았다. 명 · 청에서는 황제의 등극, 황태자의 책봉, 조선 국왕의 사호(賜號) 및 책봉, 기타 큰 일에는 반드시 사신을 보내 황제의 조칙을 반포하였다.
명나라 초에는 조선의 문물을 멸시하여 주로 탐학한 환관(宦官)이 오다가 세종 때부터는 문명이 높은 자로 대신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일로 올 때는 문신이 오고, 조선의 일로 올 때는 환관이 그대로 왔다.
중국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반송사(伴送使)라 개칭하여 다시 의주까지 환송하게 하였다. 이들은 도중에서 시를 읊으며 창화(唱和)하였는데, 이를 모아 1773년(영조 49)에 『황화집(皇華集)』이라는 시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