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0,800㎡. 화산리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작은 소나무숲이 있는 산기슭에 산재하여 있으며 밭 주위로 수많은 토기편이 널려 있다. 밭은 약 2∼3°의 경사로 가마의 유구(遺構)는 산기슭과 밭에 걸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밭에서 출토되는 토기파편은 가마에서 실패한 조각들로서, 찌그러지고 서로 붙고 터진 것이 대부분이며, 가마벽 파편으로 보이는 조각은 환원번조(還元燔造)된 굳은 점토질이다.
여기에서 발견되는 토기들은 대부분 통일신라시대 인화문토기로서 전량의 약 5분의 1 정도에 회유가 시유되었다. 기형(器形)은 완(盌) · 합(盒) · 반구병(盤口甁) · 장경호(長頸壺) 등의 종류가 많으며, 큰 항아리와 합형(盒形)의 파편도 있어 종류가 다양하며, 시문된 인화문도 수십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