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야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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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문집(권7) / 유가야산록
한강문집(권7) / 유가야산록
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정구(鄭逑)가 지은 기행문.
정의
조선 중기에 정구(鄭逑)가 지은 기행문.
개설

「유가야산록」은 정구의 문집인 『한강문집(寒岡文集)』 권9에 수록되어 있다. 1579년(선조 12)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약 15일간에 걸쳐 이루어진 가야산 등반노정을 기록한 일기체 기행문으로, 가야산을 유람하고 지은 역대 글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내용

정구는 한 차례 가야산을 유람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글을 같이 읽고 있는 이백유(李伯愉)·이공숙(李恭叔) 형제는 가야산에 가본 적이 없기에 함께 좋은 계절을 타고 등반하자고 권유한다.

이들은 홍류동(紅流洞)에 이르러 바위에 앉아 쉬면서 가을에 단풍이 물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기도 한다. 산봉우리는 우뚝하고 골짜기는 깊숙하여 산세가 험한 것을 걱정하게 된다. 그들은 바윗돌에 새겨놓은 홍류동(紅流洞), 자필암(泚筆巖), 취적봉(吹篴峯), 광풍뢰(光風瀨), 제월담(霽月潭), 분옥폭(噴玉瀑), 완재암(宛在巖) 등을 보고 최치원(崔致遠)이 명명한 것을 밝히고 또 그의 「진농산시(盡籠山詩)」를 읽어보기도 한다. 홍하문(紅霞門)을 지나 학사대(學士臺)에 오른다. 다시 내원사(內院寺)·득검지(得劍池)의 아담한 경치를 완상한다.

정각암(淨覺菴)·성불암(成佛菴)·심원암(深源菴)·원명사(圓明寺) 등을 두루 구경한 뒤 봉천대(奉天臺)에 올라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들을 살펴보고서 희미한 인간세상을 개미집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금오산(金烏山)과 비슬봉(琵瑟峰), 그리고 그 아래의 쌍계사(雙溪寺), 공산(公山), 임고(臨皐) 등을 바라본다. 득검지에 다시 들러 한동안 거닐어 지족암(知足菴)을 찾아가서 잔다.

제월담(霽月潭)에 이르러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깨끗한 단풍나무의 경치에 매료되기도 한다. 승려를 시켜 길을 인도하게 하여 백운대(白雲臺)를 찾아보고 연석암(軟石巖)을 거쳐 주암(舟巖)에 도착한다. 끝으로 혁림재(赫臨齋)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과일을 나누어 먹는다. 저자는 우정을 다 나누지 못하고 각기 헤어지게 되어 못내 섭섭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

의의와 평가

「유가야산록」은 다른 어떤 가야산 기행문보다도 자세한 묘사와 치밀한 사실기록이 돋보인다. 또 다른 특징은 저자가 가야산 유람을 경치를 구경하는 데에만 의의를 두지 않고 마음을 닦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있는데, 성리학자로서 여행의 시작에서 끝까지 줄곧 『근사록(近思錄)』과 「남악창수지(南嶽唱酬誌)」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읽고 노래하고 있는 점이다. 여행 중에도 거경(居敬: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여 품행을 닦음) 공부를 폐하지 않고 있어, 학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강문집(寒岡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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