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13년경.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3㎝, 가로 89㎝.
사모紗帽를 쓰고 단령團領을 입고서 공수拱手한 채 의자에 앉은 좌안칠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사모는 높이가 낮고 모정이 평평하며 양각이 넓은 조선중기의 모제(帽制)를 보여준다. 바닥에 채전이 등장한 점도 조선초기 공신상과 구별되는 중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화법에 있어서는 안색은 엷고 밝은 살빛으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이목구비 등 안면의 구성 요소 및 외곽을 갈색선으로 규정하였다. 다만 윗눈꺼풀 부위는 검고 가는 선으로 표현하였다. 골상학에서 말하는 오악(五嶽: 이마, 코, 턱, 좌우 광대뼈) 부위에 묘선에 부수되는 선염처리 없이 홍기(紅氣)를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살짝 시채하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기법은 안면의 도드라짐을 나타내고자 한 조선 중기 초상화법의 특징으로 해석된다.
삼각형 모양의 단령 자락 앞으로 교의자의 팔걸이가 표현된 점, 단령 치맛자락의 트임 사이로 내비치는 의복이 각이 진 직선으로 묘사되고, 공수자세의 틈사이에 흰 소매가 보이지 않고, 마주한 손의 의습에 부채꼴 모양의 5~6개의 주름선을 간략하게 그린 점 등에서 익사공신상인「임장 초상」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흉배를 보면 정1품이 하는 공작문양과 서대를 착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광해군 즉위년인 1608년에 진원부원군晉原府院君에 제수되었으므로 당시의 품계와도 일치한다. 따라서 유근 초상은 1613년 익사공신에 녹훈되면서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광해군대 공신초상의 면모를 알려주는 대표작이다.
한편, 옷주름의 처리는 굵고 검은 선으로 단령 윤곽을 그리고, 주름진 부분은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였는데, 아직 음영 기법이 시도되지 않았다. 바닥에는 적색, 황록색, 청색, 백색 등 농채를 사용한 채전(彩氈: 중국에서 전래된 양탄자의 하나)이 깔려 있어 배경에 대한 공간적 인식을 보여준다.
조선 중기 초상화의 엄중한 표현 형식을 예시해주는 대표적인 초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