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대사간,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평중(平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기계(杞溪,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
  • 사망 연도1737년(영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시강원필선|성주목사|경상도관찰사|대사간|황해도관찰사
  • 출생 연도1659년(효종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대사간,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평중(平仲). 유대의(兪大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희증(兪希曾)이다. 아버지는 유박(兪樸)이며, 어머니는 정취도(鄭就道)의 딸이다. 부인은 이관운(李觀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5년(숙종 2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99년(숙종 25)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어 경연의 허실과 구언(求言: 왕이 신하에게 정치의 득실에 대한 견해를 구함.)의 겉치레, 형벌과 포상의 어긋남, 당쟁의 폐단 등을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지평·집의·장령·정언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을 주도하였다.

소론에 속하는 인물로서 1701년에는 장희빈(張禧嬪)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론측의 공격을 받고 있던 최석정(崔錫鼎)을 옹호하다가 해직되기도 하였다. 1708년에는 황해도암행어사가 되어 민정을 시찰하였고, 이어 사간·집의, 세자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다. 1711년(숙종 37)에는 진주 사은 겸 동지사(陳奏謝恩兼冬至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이 때 청의 목극등(穆克登)과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울 일을 의논하고 돌아왔다. 이후 시강원필선 등을 지내고, 1717년(숙종 43) 당상관에 올랐으나 노론측의 견제로 관직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경종 즉위 후 소론이 집권하자 성주목사로 나갔다가, 1722년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승지로 전보되고, 대사간,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파직되었다가 뒤에 승지로 복귀하여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37년(영조 13) 송진명(宋眞明)의 주청으로 효자의 정려를 내리고 증직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