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출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천서(天瑞), 호는 호곡(壺谷). 공조참의 유승현(柳升鉉)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참봉 유도원(柳道源)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김경온(金景溫)의 딸이다.
1760년(영조 36) 김강한(金江漢)의 사위가 되어 학문적인 감화를 입었으며, 1772년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나아가 수년간 학문에 전념하였다. 1780년(정조 4) 생원시에 합격하고, 1785년 천거로 태릉참봉(泰陵慘奉)에 임명되었다. 부임할 무렵 『심경』·『근사록』·『사문간독(師門簡牘)』을 여장과 함께 꾸리고는 “이 책들은 나의 엄사(嚴師)이다.”고 하였다.
1787년 사옹원봉사, 약방제조를 거쳐 1788년에는 평시서직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의금부도사, 송화현감, 장악원주부, 사도시첨정을 거쳐 1795년에는 고성군수(高城郡守)로 부임해 군정을 바로잡고 선정을 베풀었다. 1797년 안변부사(安邊府使)로 부임했다가 2년 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주력하였다.
유범휴는 일생 주희·이황·이상정의 학문을 확충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런 연장선에서 1808년(순조 8) 영남 사림들이 백운동서원에서 강회를 개최하자 「서명(西銘)」을 강의하였다. 또한, 사빈서원(泗濱書院)·고산서원(高山書院) 강회에서 「옥산강의(玉山講義)」·「백록동규(白鹿洞規)」·선사유묵(先師遺墨)을 강의하는 한편, 선비들을 사빈서원에 모아 『심경』을 통독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스승 이상정과 학문을 문답한 편지 중에서 중요한 것을 모아 『사문간독(師門簡牘)』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유범휴는 채제공(蔡濟恭)·유한인(兪漢人)·이완(李埦)·권방(權訪)·정종로(鄭宗魯) 등 경향의 명사들과 사회·학문적으로 두루 교유하였다. 특히 이완·권방과는 벼슬살이하던 1787년 서울에서 자주 만나 경의(經義)·봉직(奉職)·응무(應務)·출처(出處)·어묵(語默)의 절차에 대해 토론하였는데, 그 내용은『반촌문답(泮村問答)』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정종로·이완·유한인과도 역시 서울에서 만나 주자서(朱子書)를 강독하며 학문적인 유대를 다지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반촌문답』·『사문간독』 외에 문집인 『호곡집(壺谷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