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세자시강원문학,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6년 병조좌랑을 거쳐 1688년 지평(持平)에 올라, 노론의 중견 이조참판 이선(李選)을 탄핵하였다. 그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관직을 물러났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자 재등용되어 세자시강원문학·제용감정(濟用監正)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집의(執義) 한성우(韓聖佑)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1704년 3월 사직으로서 명나라의 멸망 1주갑(甲申年)을 맞아, 비운에 죽은 의종과 그 신하들을 위하여 단을 쌓고 추모 제사를 지낼 것을 건의하여 채택되었다. 이것이 대보단(大報壇)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
그 해 6월에 불우하게 죽은 남효온(南孝溫)·김시습(金時習)·송상민(宋尙敏) 등을 포장할 것을 건의하여 일부 시행되었고, 이어 세자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노론의 방해로 취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양사의 요직에 천거되었으나 견제를 받아 저지되었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숙종의 인정을 받고 시강원의 요직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나, 당쟁에 휩쓸려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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