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지평, 세자시강원문학,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묵수(默守)
  • 집중(集中)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晋州)
  • 사망 연도1710년(숙종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평(持平)|세자시강원문학|제용감정(濟用監正)
  • 출생 연도1651년(효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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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세자시강원문학,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집중(集仲), 호는 묵수(默守). 유찬(柳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시정(柳時定)이다. 아버지는 세자시강원필선 유연(柳㝚)이며, 어머니는 허치(許穉)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3년(숙종 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5년 승정원주서로 있을 때 윤선거(尹宣擧)·윤증 부자의 무함을 변호하고 그들을 유신(儒臣)으로 존칭할 것을 주장하였다가, 송시열(宋時烈)일파의 노론에게 미움을 받았다.

1686년 병조좌랑을 거쳐 1688년 지평(持平)에 올라, 노론의 중견 이조참판 이선(李選)을 탄핵하였다. 그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관직을 물러났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자 재등용되어 세자시강원문학·제용감정(濟用監正)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집의(執義) 한성우(韓聖佑)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1704년 3월 사직으로서 명나라의 멸망 1주갑(甲申年)을 맞아, 비운에 죽은 의종과 그 신하들을 위하여 단을 쌓고 추모 제사를 지낼 것을 건의하여 채택되었다. 이것이 대보단(大報壇)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

그 해 6월에 불우하게 죽은 남효온(南孝溫)·김시습(金時習)·송상민(宋尙敏) 등을 포장할 것을 건의하여 일부 시행되었고, 이어 세자시강원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노론의 방해로 취임하지 못하였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양사의 요직에 천거되었으나 견제를 받아 저지되었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 숙종의 인정을 받고 시강원의 요직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나, 당쟁에 휩쓸려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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