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에 남몽뢰(南夢賚)가 지은 기행문. 저자가 1592년(선조 25)에 율봉우관(栗峰郵官)으로 부임한 뒤에 몇몇 사람과 일행이 되어 속리산을 구경하고 나서 그 경치를 쓴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정봉에 오르니, 봉우리는 하늘 위에 우뚝 솟았고, 그 밑에는 옛 비석이 있고, 중간에는 조그만 대(臺)가 있으며, 마루턱에는 석탑이 있다.
비석에는 정법비(淨法碑)가 있고 대의 이름은 산호라고 하였으며, 탑은 구배(龜背)라고 하였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니 눈이 활짝 트이는데, 그 뒤로 삥 둘러 수없는 봉우리들이 눈을 머리에 이고 하늘에 치솟아 있다. 천왕봉·운장봉·관음봉·사리봉 등은 큰 봉우리요, 작은 것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천왕봉 마루 위에 초가집이 하나 있기에 중에게 물었더니, 이것이 상암이라고 한다. 암자 밑으로 100보쯤에서 길이 끊어져 등나무에 줄을 늘여놓고, 그것을 잡고 올라가는데 위태로워서 갈 수 없다고 한다. 여기에 앉았다가 걷고, 쉬었다가 걷노라니 마치 바람을 어거하고 구름을 타고서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다.
돌 위에 글씨를 쓰고 부지런히 내려와 강청암에 이르렀다. 이 암자는 봉우리 밑 시내 위 유적봉 머리에 있다. 암자 앞에 큰 돌이 있는데 1,000석 무게나 된다고 한다. 그 위에 조그마한 탑이 있고, 그 옆에 등나무에 끈을 매달아놓아 그것을 잡고 올라가도록 해놓았으나, 피로하고 겁이 나서 올라가지 못하였다.
저자는 이 글을 끝내면서 대개 이번 길에 신선이 있는 산 속에서 실컷 놀아서 평생의 묵은 빚을 갚을 수 있었기로, 한편의 글을 써서 다음날 사람들이 보게 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