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부제도는 당·송의 옛 제도를 원용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옛 도읍지인 서경·동경·남경 등지에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옛 도읍지인 개성, 태조의 어향인 전주 및 강화·광주(廣州)·수원 등지에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유수부조직은 3품 이상의 유수, 4품 이상의 부유수 각 1인을 두었으며, 이밖에 6품 이상의 판관, 7품 이상의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 장서기(掌書記) 각 1인이었으나 서경만은 판관·사록참군사가 각각 2인이었다.
여기에 8품 이상의 법조(法曹), 9품 이상의 의사·문사 각 1인을 두었으나 서경에는 의사·문사의 설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유수관은 외직으로 처리되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개성부에는 종2품의 유수 2인이었으나 1인은 경기도관찰사가 겸하였으며, 종4품의 경력(經歷), 종5품의 도사(都事)가 각 1인씩 있었고, 부민(府民)의 교육과 향촌의 교화를 위하여 교수 1인을 두었으며, 이 밑에 경아전(京衙前)으로 서리(胥吏) 40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수도의 외곽을 방어하기 위하여 강화와 광주, 그리고 수원에도 유수부를 두었으나 이들은 군사적인 행정이 주임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