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1618년(광해군 10) 후금이 명나라의 요동지방을 공격하여오자 명나라는 조선에 요동정벌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로, 평안도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하여 출정하게 하였다. 이때 유지걸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형 유효걸(柳孝傑)을 대신하여 종군하였다.
이듬해 봄에 명나라 군사들이 연속 패전하고, 우리 원정군도 심하(深河)에서 많은 희생을 당하니 도원수 강홍립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후금군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후금의 진중에서는 우리 장병들의 진심을 의심하여 홍(紅)·백(白) 두가지 색의 깃발을 세우고 홍기 아래 모이는 자는 용서하고 백기 아래 모이는 자는 처형하였다.
유지걸은 후금군의 회유에 굽히지 않고 적을 매도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조정에서는 유지걸의 고향 공주에 정문을 지어 충절을 표창하고 조봉대부(朝奉大夫) 호조좌랑에 증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