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하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창건 당시에는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조선 초기의 왕사(王師)였던 무학(無學)이 이곳에 들러서 사찰의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하여 1399년(정종 1)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중창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이 부근의 형세가 날아가는 학의 형상인데 이전의 절터는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였으므로 합당하지 않다고 하여 학이 절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 뒤 1780년(정조 4) 4월에 승통(僧統) 치유(緇裕)가 시주하여 전각(殿閣)을 중수하였으며, 1900년 10월에는 경룡(敬龍)·초해(楚海)·정선(正善) 등이 극락전을 중수하고 단청하였다. 1927년에는 금호(錦湖)가 칠성각을 신축하였고, 혼명(混溟)이 요사채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만세루(萬世樓)·칠성각·요사채 2동과 객실 1동이 있다. 정면 3칸의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최근에 조성한 5층 석탑 1기와 석등 1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