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성좌(聖佐)·용좌(溶佐). 호는 백암(白菴).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1년 독립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가산을 정리, 동생 윤세복(尹世復)과 같이 봉천성 환인현(奉天省桓仁縣)으로 이주, 그곳에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설립하고 교포 자제에게 애국심과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협의하여 한교공회(韓僑公會)를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또,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6월 대한독립단 간부 홍주(洪疇)와 같이 무기운반작업을 하였다.
1922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참모로 활약하였고, 1924년 만주의 한국독립군 통합기관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결성하자 이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간부들이 고마령(古馬嶺)에서 군사회의 도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29명이 전사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자, 참의장(參議長)으로 추대되어 참의부의 총지도자로서 사태를 수습하는 동시에 부대를 재편성하여 계속 항일전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뒤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