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일 출신. 1911년 3월 노동야학교(勞動夜學校)에 입학하여 4년간 수학하고, 1914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대전교회(大田敎會)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을 규합하여 그달 12일 청하시장에서 군중을 모아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민중계몽운동에 뜻을 두고 송라청년회(松羅靑年會)를 조직, 덕육부장(德育部長)으로 청년들을 지도, 계몽하였다.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들이 규합하여 조직한 형설회(螢雪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만주 개원현(開原縣)으로 이주하여 교회를 설립, 재만교포들의 민족애를 고취, 육성하는 한편, 노동조합을 창설하여 조합장으로서 교포들의 권익옹호에 이바지하였다. 1932년 신병으로 귀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