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병 ()

목차
천주교
인물
일제강점기 장호원성당, 고마리성당 등에서 사목한 사제. 신부.
이칭
죽총(竹叢)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9년(고종 26)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경기도 안성시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장호원성당, 고마리성당 등에서 사목한 사제. 신부.
내용

호는 죽총(竹叢). 경기도 안성 출생. 어릴 때 일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용진골)으로 이사하였고, 이곳에서 큰아버지 상진(相震)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905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가톨릭대학 신학부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신부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뒤, 1920년뮈텔(Mutel, G. C. M., 閔德孝)주교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첫 발령지는 충청북도 음성 장호원성당이었으며, 곧 신설성당인 충청북도 괴산 고마리 성당(속칭 높은 사랑이 성당)에 부임하여 한옥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1923년에는 아동교육기관인 숭애 의숙을 설립하였다.

1928년에는 서울 명동의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 2명을 초청하여 이들에게 의숙의 교육을 전담시켰다. 그 뒤 폐렴을 앓게 된 윤 신부는 1932년에 요양 겸 경기도 행주본당으로 전임되었다가, 1935년 황해도 은율본당으로 발령받았다. 이곳에서 유치원과 성당학교를 설립하고 수시로 신부들과 강사들을 초청하여 교리강습회·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교육 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한편, 1939년 기해박해 100주년을 맞이하여, 신자들과 함께 박해 때 신자들이 피신하였던 구월산을 등반하여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미사를 집전하였고, 박해시대 천주교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주제로 한 소설 『은화(隱花)』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이 소설은 그의 조카 윤형중(尹亨重) 신부가 발행하던 『경향잡지』에 1950년 6월호까지 총 12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50년 6월 24일 새벽 6·25전쟁이 발발하기 하루 전날 정치보위부에 연행되었다가 해주로 이송된 사실까지는 알려졌으나, 그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은율 출신의 이계중(李啓重) 신부가 은사 윤의병 신부의 납치 27주년을 맞이하여 1977년에 『은화』를 출판하였다.

그는 1896년부터 한국인 신부가 1년에 1, 2명, 많아야 3, 4명 배출되던 시기의 신부로서 드물게 교리교육의 중요성과 순교자 문제를 인식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은화』(윤의병, 가톨릭출판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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