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당 임씨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기심성설」, 「예악설」, 『윤지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윤지당(允摯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 사망 연도1793년(정조 17)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721년(경종 1)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윤지당유고 미디어 정보

윤지당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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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기심성설」, 「예악설」, 『윤지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윤지당(允摯堂). 함흥판관 임적(任適)의 딸이며, 임성주(任聖周)의 여동생이다. 남편은 신광유(申光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총명하고 부지런해 임성주로부터 『효경』·『열녀전』·『소학』·사서 등을 배웠고, 여러 형제들과 함께 경전·사서(史書) 등을 강론했는데, 식견이 탁월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인정이 많았으며, 교양과 부덕을 쌓아 한치도 범절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일생 동안 존심양성(存心養性)의 공을 쌓아 나태하거나 방심한 일이 없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가사를 맡아, 낮에는 부녀자의 일에 진력하고 밤이 깊어서는 소리를 낮추어 책을 읽어 공부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가족들도 윤지당임씨의 학문진취를 알지 못했으나 몰래 쌓은 경전에 대한 조예와 성리학의 이해는 당시의 대학자들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죽은 뒤 유고 40여 편이 수습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경전 연구와 성리설에 관한 논설 및 중국 역대 위인·영웅·학자들에 대한 인물 논평들이다.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인심도심사단칠정설(人心道心四端七情說)」·「예악설(禮樂說)」·「극기복례위인설(克己復禮爲仁說)」·「오도일관설(吾道一貫說)」 등의 논문은 조선 후기 성리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 7조와 『중용』 27조에 대한 경의(經義) 2편과 「논안자소락(論顔子所樂)」·「안자호학찬(顔子好學贊)」·「심잠(心箴)」·「인잠(忍箴)」·「시습잠(時習箴)」등도 경전에 대한 조예를 보여준다.

또한 예양(豫讓)·안자(顔子)·자로(子路)·가의(賈誼)·이릉(李陵)·사마광(司馬光)·왕안석(王安石)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남겼다. 유고는 1796년(정조 20) 동생 임정주(任靖周)와 시동생 신광우(申光祐)에 의해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1책으로 편집, 부록과 함께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 - 『녹문집(鹿門集)』

  • - 『운호집(雲湖集)』

  • -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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