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황해감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4년 홍문관부수찬·수찬에 올랐다가 박상(朴詳)·김정(金淨)의 사건이 일어나자, 양시지론(兩是之論: 자기의 입장을 미룬 채 양쪽이 모두 옳은 측면이 있다는 견해)을 주도하여 훗날 사림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언에 제수되어 대사헌 성몽정을 탄핵하여 체직(遞職: 관직의 교체)시켰다.
사헌부지평으로 근무시 고향인 남원 만복사(萬福寺)의 부처 속에 있는 물건을 유생이 훔쳐간 사건이 일어나자 앞장서 추국하였는데, 이 일을 두고 불가(佛家)를 비호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어 1517년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정조(政曹)에 합당한 인물이 아니라는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이 후 헌납·장령·부교리·교리를 거쳐 장령으로 재임용되었다가 전라도체찰사(全羅道體察使) 종사관, 부응교를 지낸 뒤 1522년에는 전라도어사, 전한을 거쳐 이듬해 사인(舍人)에 제수되었다. 그 뒤 의주목사·동부승지·황해감사·형조참의·이조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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