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황해감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중평(仲平)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원(南原)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의주목사|동부승지|황해감사|형조참의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홍갑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황해감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평(仲平). 윤희장(尹希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처관(尹處寬)이다. 아버지는 참찬 윤효손(尹孝孫)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로 근무하던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주서 등을 역임하였다. 1510년(중종 5) 경연검토관의 공으로 별조궁(別造弓: 특별히 제작한 활)이 하사되었다.

1514년 홍문관부수찬·수찬에 올랐다가 박상(朴詳)·김정(金淨)의 사건이 일어나자, 양시지론(兩是之論: 자기의 입장을 미룬 채 양쪽이 모두 옳은 측면이 있다는 견해)을 주도하여 훗날 사림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언에 제수되어 대사헌 성몽정을 탄핵하여 체직(遞職: 관직의 교체)시켰다.

사헌부지평으로 근무시 고향인 남원 만복사(萬福寺)의 부처 속에 있는 물건을 유생이 훔쳐간 사건이 일어나자 앞장서 추국하였는데, 이 일을 두고 불가(佛家)를 비호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어 1517년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정조(政曹)에 합당한 인물이 아니라는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이 후 헌납·장령·부교리·교리를 거쳐 장령으로 재임용되었다가 전라도체찰사(全羅道體察使) 종사관, 부응교를 지낸 뒤 1522년에는 전라도어사, 전한을 거쳐 이듬해 사인(舍人)에 제수되었다. 그 뒤 의주목사·동부승지·황해감사·형조참의·이조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