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의주 출신.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2·8독립선언 당시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에 참여하여 활동하였으며, 그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조선청년단에 가입, 활동하였다.
1919년 7월 임시정부 만주특파원으로 안동현(安東縣)에 파견되어 함석은(咸錫殷)·박영유(朴永裕)·장자일(張子一) 등과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중국 샤먼대학[廈門大學] 교수로 중국학생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1937년에는 중국의 정치공작기관인 산시군정치공작대[山西軍政治工作隊]에서 중국 산시군 소장으로 일본군과 항전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입법의원위원을 지내고 그뒤 목포사범학교·군산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