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현리적석총은 1997년 10월 9일에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마을 뒷편 야산에 위치하며 경사가 10˚ 이내로 완만한 곳에 축조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돌무지무덤의 규모는 전면측면 길이가 약 19m 내외이고, 높이가 5∼6m 정도이다. 그리고 돌무지무덤의 석재들은 대부분 자연석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크기가 큰 것은 65×60×20㎝, 중간 것은 55×40×23㎝, 작은 것은 23×14×7㎝ 정도로 다양하며 무덤의 전체 모습은 원형이다.
그러나 돌무지무덤의 최하단 기단부의 형태, 함몰되어 있는 돌무지의 상태, 높이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원래는 위로 오를수록 좁은 형태를 이루는 피라미드 형태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태와 유사한 것으로는 고구려 돌무지무덤인 집안(輯安)의 태왕릉(太王陵), 장군총(將軍塚), 서울 강동구에 있는 백제 초기 유적인 석촌동 돌무지무덤, 그리고 산청군 금서면의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이 있다.
은현리적석총은 고구려 초기 무기단식 돌무지무덤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하단부는 사각형이다. 이러한 유사성에 의거하여 400년 고구려군의 남정 이후 이 근처에 고구려군이 상주하며 조영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더구나「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의 우벌성(于伐城)을 신라 경덕왕대 울주에 속한 우화현(于火縣)으로 볼 경우 고구려가 군대를 울산에 보낸 구체적 예가 되는 것이다. 고구려가 그들의 점령지 혹은 상대국 군사적 거점에 군대를 주둔시킨 사실은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 일대는 우시산국(于尸山國)으로서 반독립적인 형태를 유지하다가 신라에 복속되었으며 예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은 광개토왕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한 고구려군이 울산을 거쳐서 부산·김해로 나아가는 통로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