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광해군 9)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772년(영조 48)에 주지영(朱之榮)이 중수하였으며, 1950년 6·25동란시 파손된 것을 1975년 전교(典校) 이응수(李應洙)와 이 지역 유림들이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각 6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4칸의 양현재(養賢齋), 외삼문(外三門), 존덕재(尊德齋)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대성전 앞 쪽에 명륜당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 · 명륜당 · 동재 · 서재 · 수인루 · 내삼문이 여러단의 계단식 축대와 가파른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대성전 마당 좌우에 양무를 배치할 공간이 비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 중 『향안(鄕案)』과 『청금록(靑衿錄)』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향교는 198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