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향교 ()

의령향교
의령향교
유적
국가유산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경상도 의령현에 세워진 향교.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서동리 393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의령향교(宜寧鄕校)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82년 08월 02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의령군 의병로15길 30 (의령읍, 의령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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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의령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경상도 의령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조선 전기에 창건되었고, 16세기 말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75년 복구했다.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경상도 의령현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북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의령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변천

조선 전기 의령향교의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동문 밖에 있던 것을 1582년에 현재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렇게 보았을 때 북쪽에 있던 향교가 동문 밖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617년에 창건되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건된 것이 이렇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후 17세기 중반, 18세기 중후반, 19세기 중반 및 후반에 각각 중수되었다고 전해지며, 20세기에 들어서도 여러차례 보수 및 중수되었다.

형태와 특징

의령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수인루를 통해 들어서면 정면으로 명륜당이 있고, 양 옆으로 동재 · 서재가 있다. 명륜당 뒷편의 내삼문을 통해 대성전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비탈진 면에 있기 때문에 계단식 축대와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경내에 양현재(養賢齋)가 있으며, 경외에 20세기 초반에 건립한 사마재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 청소년 충효교실 등 여러 전통문화 계승사업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의령향교는 198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교궁대관(校宮大觀)』(성균관, 2001)
『경상남도지』(경상남도, 1978)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의령향교약지』(의령향교, 1973)

논문

조상순, 「조선 중기 이전 향교건축의 형성과 전개: 관련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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