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에는 태고 시대부터 우주의 기원과 형성, 변화를 탐구하는 우주론이 있었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꼽히는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탄생』은 신화의 언어를 빌려 삼라만상의 생성 과정과 질서를 서술하였다. 여기에 담긴 우주생성론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카오스(Chaos), 곧 빈틈이자 빈터였다. 그 뒤를 이어 땅과 하늘, 밤과 낮 등 온갖 자연물과 자연현상이 생성되었다. 서양 우주론은 탈레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6세기 이후에 진전을 이루어, 신화적 색채를 벗고 둥글납작한 지구를 중심으로 반구형 하늘에 천체들이 수학적 질서를 갖추어 배열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후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에 이르러 철학적 우주론으로 전개되었다.
중국 고대의 우주[천지]론은 창조신화로서 반고 신화에서 처음 나타난다. 반고(盤古)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우주 창조신으로, 그에 대한 기술은 오(吳)나라 서정(徐整)이 쓴 『삼오역기(三五歷紀)』에 보인다. 『삼오역기』에서는 천지가 생기기 이전, 알껍질과 같은 혼돈된 암흑 상태 속에서 반고가 출현했다고 기록하였다. 천지의 시원에 관한 관념으로서 태시(太始), 태소(太素)와 같은 개념이 『열자(列子)』, 『회남자(淮南子)』 등에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하늘의 본질에 대한 고대적 사유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존재인 상제(上帝)의 표상은 유가적 우주론의 한 부분을 이룬다. 이와 더불어 중국 고대에는 천문 · 역법과 결부되어 하늘의 형상과 우주 구조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주역』에 나타나는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의 이론은 중국 고대 우주론을 대표한다. 중국 고대 우주론은 인격적 주재자가 지배하는 우주에서 출발하여, 발생적 시원으로서의 의미, 자연의 법칙으로서의 우주, 나아가 형이상학적 본체로서의 의미로 전환되는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송대에 이르러 형성된 이기(理氣) 개념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우주론은 합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우주론으로 체계화되었다. 나아가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적 우주관과 조선 후기 서학(西學)의 수용이 전통 우주관에 미친 영향과 그에 따른 변화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고대 유학의 우주론은 주로 『역전(易傳)』에 나타나 있으며, 노자와 음양가(陰陽家)의 사유와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은 · 주대의 역사를 기록한 『시경』이나 『상서』에는 상제 개념이 등장하여 인격적 우주관의 흔적을 보여 주지만, 『역전』의 우주론은 자연주의적 성격의 물질적 우주관을 지니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천지 이전의 근원을 도(道)로 규정하고, 만물이 도로부터 생성된다고 보았다. 전국시대 음양론자의 우주론은 이러한 사유와 결합하여 중국 고대 우주론의 근간을 이루었다.
순자는 “하늘의 운행에는 불변의 규칙이 있어서 요임금이 다스린다고 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임금이 다스린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스림에 호응하면 길하고, 어지러움에 호응하면 흉하다.”라고 하였다. 그는 우주 변화의 법칙이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시비선악의 행위와 무관하게 필연성을 가지고 전개된다고 보았다. 이로부터 천(天)과 인(人)의 역할을 구분하는 천인지분(天人之分)의 학설이 전개되었다.
『역전』의 우주론은 태극에서 음양이 반복적으로 분화하고, 이를 통해 사상(四象) · 팔괘(八卦) · 64괘(六十四卦)가 형성된다고 설명하여 존재 세계의 무한한 변화를 해석하였다. 『도덕경』과 『역전』의 우주론은 모두 생성론과 존재 구조론의 양면적 성격을 가진다. 반면 전국시대 추연(鄒衍)을 대표로 하는 음양오행론은 우주의 변화를 음양오행의 상생상극(相生相剋) 원리로 해석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동중서(董仲舒)는 역사철학적 시각에서 천인상관론과 음양오행론의 관점으로 인격적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중서의 사유는 오히려 탈인격적 철학적 우주론으로 나아가는 보편적 발전 경향에서 보면 퇴행적 성격을 지닌다.
송대 성리학에 이르러서는 태극의 이(理)와 음양오행의 기(氣)가 결합하여 우주가 생성된다는 이기론적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북송 성리학의 선구자인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소옹(邵雍)은 각각 우주에 관한 중요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주돈이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통해 태극과 음양오행의 변화라는 우주적 현상과 인문적 · 도덕적 가치를 결합하였다. 장재는 태허일기(太虛一氣)를 중심으로 기론적 우주론을 전개하였으며, 소옹은 『주역』의 선후천론(先後天論)에 근거하여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수적 질서로 해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이기론과 인성론에 학문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우주론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약하였다. 그러나 서경덕, 이이, 홍대용, 최한기 등은 비교적 독창적인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서경덕은 장재(張載)의 사상을 계승하여 태허(太虛)와 원기(元氣)의 개념을 논하며 자연주의적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반면 이이는 「역수책(易數策)」, 「천도책(天道策)」 등을 통해 자연론적 우주 체계와 본체론적 도의(道義)를 종합하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홍대용과 박지원은 서양 근대 우주론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학적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홍대용은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문답을 통해, 우주공간은 무한하며 지구와 유사한 행성들이 무한히 존재한다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최한기는 인간과 세계의 변화를 ‘운화(運化)’로 규정하고, 우주의 변화를 대기운화(大氣運化), 인간의 변화를 통민운화(統民運化)라 하였다. 그는 이를 모두 신기(神氣)의 운화로 파악하여, 신기를 모든 변화의 근원적 힘으로 보고 천인론(天人論)의 관점에서 인간과 우주의 변화를 해명하였다.
이처럼 유학의 우주론은 자연 세계와 인문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문적 가치와 목적을 함께 담아 내는 이론 체계로 전개되었다. 이는 서양 우주론이 주로 이론적 · 자연과학적 탐구에 집중하였던 것과 구별된다. 다시 말해 중국 고대의 천문 관찰이 정치적 · 인문적 이상 실현을 위한 목적과 결부되었던 것과 달리, 서양 천문학은 자연과학적 탐구의 자율성을 지향하면서 발전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