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신의는 성실[誠]인데, 사람[人]과 말[言]의 회의자(會意字)이다”라 하여, 인간의 언어적 약속이 거짓 없이 실현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유학에서도 신(信)은 기본적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에 근거하며, 말과 마음이 일치하고, 말과 행동이 일관되어 인간관계를 결합시키는 내적 · 외적 덕목이다.
신은 마음과 말[언어적 약속], 행위 사이의 일관성과 일치를 의미하지만, 외연적으로는 다양한 주체와 대상과도 연관된다. 신은 붕우(朋友) 사이에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윤리 원칙이면서, 동시에 군주가 일을 공경스럽게 행하여 경제적 안정과 신체적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얻어야 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논어』에서는 “붕우와 사귀는 데 믿음이 없지는 않았는가?”라고 하였고,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력을 충분하게 하면 백성들이 신뢰한다”고도 하였다. 주희에 따르면, 내적으로 신은 진실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며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윗사람이 믿음을 중시하면 민중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로써 그들이 군주에게 통치권을 일임하여 맡기게 된다고 하였다.
『서경』 「탕서」에는 탕(湯)이 걸임금을 치는 장면에서 “그대들은 부디 나 한 사람을 도와 하늘의 벌을 이루도록 하라. 내가 그대들에게 크게 상을 내리겠다. 그대들은 믿지 않음이 없어야 할 것이니, 나는 식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탕은 천명을 이어 하걸(夏傑)을 망하게 하면 상을 내리겠다는 것을 믿기 바란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다. 또 『서경』 「군석(君奭)」에는 하늘의 명이 쉽지 않음과 하늘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천명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하고, 하늘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늘이 도덕적 근원으로서 기준에 따라 부합하지 않으면 주1을 내리는 존재이므로, 도덕적 기준 없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춘추좌전』 「환공」 6년 조에서는, 수후(隨侯)가 초나라 군사를 추격하려 하자 계량(季梁)이 저지하며 말하기를 “ 도(道)란 것은 민중에게 충실하고 신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위의 군주가 백성들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충(忠)이고, 축사(祝史)가 신(神)에게 말을 바르게 고하는 것이 신(信)입니다. 지금 백성은 주리고 있는데 임금은 사욕을 만족하게 채우고, 축사(祝史)는 거짓말을 들어 제사 지내니, 신(臣)은 이런 상태로 대국을 대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신(信)은 지상에서 일어난 정치적 행위에 대하여 축사가 신(神)에게 사실 그대로 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의예지와 사단(四端)에서 신(信)을 말하지 않은 것은,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사단을 행하면 신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주희는 사단과 신의 관계를 오행(五行)에서 금 · 목 · 수 · 화와 토(土)의 관계와 같다고 하였다. 『논어』는 수레와 말의 연결을 예로 들어, 끌채 끝과 쐐기가 없으면 수레가 굴러갈 수 없듯이 신은 인간관계를 맺어 주는 핵심 덕목이라고 하였다. 민중이 군주를 신뢰하지 않으면 군주는 존립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논어』에서 군자가 지녀야 할 덕목은 의(義)를 바탕으로 하고, 예(禮)로 이를 행하며, 공손함으로 드러내고,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즉, 군자는 신으로 의리를 실천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공자는 “약속한 말[信]이 의리에 가까우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신은 의리에 부합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곧 신이 예와 의에서 분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 예의와 분리될 경우, 약속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이를 두고 “사실에 맞게 하고자 하고, 반드시 그 결과를 보여 주려 한다면 이는 완고한 소인이다”라고 하였다. 또 “신을 좋아하면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해롭다”라고도 하였다. 이는 신뢰가 객관적 정보에 입각해 보편성을 가져야 하며, 주관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뜻한다.
맹자는 신이 보편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義)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약속한 말을 반드시 그대로 실행할 필요는 없으며, 행위가 반드시 말의 결과를 보여줄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의리에 따르느냐 하는 점이다. 맹자에게 인(仁)과 의(義)는 말과 행위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다. 그는 통치자의 자율적 도덕성과 함께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 · 경제 제도를 백성의 신뢰의 기초로 보았고, 이를 통해 왕도(王道) 정치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반면 순자는 ‘신뢰’의 내적 근거를 인의의 덕(德)을 알고 행할 수 있는 군자(君子)나 성인(聖人)에게 두었다. 특히 의(義)는 사람들이 통치자를 신뢰하는 근본이 되며, 신뢰와 함께 천하를 다스리는 요점이라 하였다. 그는 신뢰를 패도(覇道)와 왕도를 포괄하여, 천자와 제후, 제후 상호 간, 군주와 신하, 군주와 백성 사이에서 행해지는 예법(禮法), 인의(仁義), 정령(政令), 맹약(盟約) 등에 대한 믿음으로 이해하였다.
초기에 신(信)은 신(神)에게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고하는 의미에서 출발하였으나, 이후 공동체의 도덕 개념으로 확대되었고, 맹자에 이르러 인간 본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언급되며, 『중용』의 성(誠)과 연결되었다. 『중용』은 성을 천도(天道)로 정의하며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고 하여, 성을 천도의 구현으로 보았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 본질로서의 본성은 천도 자체인 성이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내용은 성의 구체적 표현이다.
이러한 개념의 확장은 성리학에 이르러 신(信)을 사성(四性)과 함께 성(性) 가운데 하나로 해석하였다.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의 전제 아래, 우주적 본질인 천도의 성실성이 곧바로 인간의 본질인 인성(人性)의 신(信)이라고 보았다. 이는 윤리적 선진 유학이 형이상학적으로 전개되면서 나타난 이론적 발전이다. 그 의미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힘으로서의 신의가 더 나아가 인간 삶의 토대이자 세계의 본질임을 천명한 것이다.
유학이 수용되기 시작한 고대의 삼국시대는 전국적(戰國的) 상황이었기에 내부의 상호 신뢰와 국제 간 신뢰가 자주 강조되었으며, 화랑의 세속오계에도 신의를 강조한 내용이 들어 있다. 성리학의 수용 이후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신의는 인간성 및 세계 본질인 이(理) 또는 성(性)과 연계되어 이해되었다. 특히 인물성 논쟁(人物性論爭)이 벌어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오상론(五常論)을 중심으로 많은 논변이 전개되었다.
신은 도덕적 이념을 구체적 현실에서 실현하는 과정에서 외적 합리성과 타당성을 포함하며, 일의 진리의 기준으로까지 지칭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불평등, 불공정, 차별과 편향 문제를 재검토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