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신의는 성실[誠]인데, 사람[人]과 말[言]의 회의자(會意字)이다”라 하여, 이는 주로 인간의 언어적 약속이 거짓 없이 실현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임을 보여 준다.
공자(孔子) 이전에 있어서 신의라는 개념은 주로 사회적인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강조되던 개념이었다. 증자(曾子)의 삼성(三省) 가운데 신의는 벗과의 인간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덕목이며, 정치적 측면에서는 치자(治者)가 피치자(被治者)인 민에게 지켜야 할 덕목이며, 나아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즉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등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신의는, 그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상호 신뢰의 토대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공자가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는 마치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하였으니, 신의는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붕우간의 관계를 출발로 한 신의에 있어서, 모든 신의 있는 행위가 꼭 정당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신의는 의리에 맞는 것이라야 그 말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정당성이 수반되지 않는 약속과 신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즉 반의리의 신의, 반생명적이고 반사회적인 신의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회적인 덕목으로서의 신의는 도덕적 정당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 도덕적 정당성의 터전은 인간 내면의 본성이 가지는 성실함이다. 맹자(孟子)는 이런 관점에서 신의를 인간성의 하나로 규정한 것이며,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인간다움의 모습이다.
초기 신(神)에 대한 믿음과, 사회적 도덕 개념으로 전개된 신은 맹자에 이르러 인간의 본성으로 확인되고, 다시 『중용』의 성(誠)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내용을 갖게 된다. 『중용』은 성을 천도(天道)로 규정하는 한편, 그 첫머리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고 하여, 인간성을 천도의 구현으로 보았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 본질로서의 본성은 천도 자체인 성이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내용은 성의 구체적인 내용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상적 전개는 성리학에 이르러, 신과 성을 같은 위치에 놓고 이해하게 하였다.
즉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의 전제 아래 우주적 본질인 천도의 성실성이 곧바로 인간의 본질인 인성(人性)의 신임을 주장하였다. 이는 윤리적 선진 유학이 철학적 심화를 거치면서 나타난 것인데, 그 의미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힘으로서 신의는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의 토대인 이 세계의 본질 자체임을 천명한 것이다.
실로 인간의 삶은 이 세계에 대한 굳은 신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런 이론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사회가 있는 곳에 그 구성원간의 신뢰가 중요하듯 한국사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유학이 수용되기 시작한 삼국 시대는 전국적 상황(戰國的狀況)인만큼 내부의 상호 신뢰와 국제간의 신뢰가 자주 강조되었으며, 화랑의 세속오계에도 신의를 강조한 내용이 들어 있다.
성리학의 수용 이후 신의는 인간성 및 세계 본질인 이(理) 또는 성과 연계되어 이해되었으며, 특히 인물성 논쟁(人物性論爭)이 벌어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오상론(五常論)을 중심으로 많은 논변이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