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옹주(貞惠翁主)의 생모이다. 처음 궁인으로 궁중에 들어와 태종의 총애를 받아 궁주에 봉하여지고, 정혜옹주를 출산하여 의빈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422년(세종 4) 태종이 죽자 비관하여 세종에게 고하지 않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었다.
밤낮으로 불경을 외우면서 선왕의 명복을 빌었으므로 후궁들이 본받아 앞을 다투어 머리를 깎았다. 당시 조선은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 때였으나 궁중에서는 심하게 금지시키지 않았으므로 범패와 공양의 도구를 준비해두고 조석으로 예불하였다.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를 맡아서 길렀다.
1453년(단종 1) 늙고 병들자 금성대군이 사저에서 한양(閑養: 여유있게 봉양함)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혜빈궁 양씨(惠嬪宮楊氏)의 처소로 옮겨서 지냈다.
1457년(세조 3) 선왕을 위하는 왕의 특별 배려로 궁호를 영수궁(寧壽宮)으로 고치고 노후를 안양(安養: 편안히 모심)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