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호는 심재(心齋). 일본 동경고등공업학교 방직과를 졸업한 뒤 귀국, 60여 년간 방직기술의 계몽과 방직공업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15년부터 중앙학교(中央學校)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는 한편, 경성상업회의소에서 펴내는 『상공월보(商工月報)』 공업수지란(工業須知欄)에 매호마다 「염색론」·「공업과 원동력」 등 많은 글을 기고하여 기업가들에게 상공학 지식을 보급하는 데 공헌하였다.
당시 중앙학교의 교장이었던 김성수(金性洙)에게 족답기와 수직기로 댕기·분합·허리띠·주머니끈·대님 등을 짜던 경성직유주식회사를 인수하도록 권유하였고, 최신식 역직기(力織機)를 도입하도록 하여 와사직(瓦斯織)·와사단(瓦斯緞)이라고 하는 혼합사직과 모시 대용의 한양목(漢陽木)·한양사(漢陽紗) 등을 짜서 ‘삼성표’라는 상표를 붙여 상업화 시킨것이 우리나라 면방직 공업의 효시가 되었다.
1919년에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광목 짜는 회사인 경성방직주식회사의 대규모 공장 건설에서 기술분야를 담당하였으며, 1923년 4월 첫 제품인 ‘태극성’표 광목을 내놓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한국기술총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섬유공업 발전에 이바지한 선각자의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