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향(叔向). 아버지는 승지에 추증된 이수(李綏)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판관 민철명(閔哲命)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광해군 때 폐모를 논의하자 홍무적(洪茂積)과 함께 상소하여 모비(母妃)를 폐할 수 없음을 극간하고 이원익(李元翼)을 죄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젊어서 청운군(靑雲君) 심명세(沈命世)와 친하게 지냈는데, 심명세가 은밀히 반정의 모의를 알려주자 심명세를 따라 능양군(陵陽君: 뒤의 인조)을 한번 만나보고는 다시는 가지 않았다.
누가 오해를 하자, “이분이 장차 우리 임금이 될 터인데 가까이에서 친하기를 바라면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된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 반정이 성공하자 광릉(光陵)의 민가에 숨어버렸다. 인조가 세번이나 사람을 보냈으나 끝내 사양하고 나오지 않았다.
공신을 기록할 때 모든 공신들이 이갱생의 특이함을 싫어해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서 이름을 빼버렸다. 1623년(인조 1)에 김화현감이 되고 이듬해에 상의원판관(尙衣院判官)이 되었으며, 이괄(李适)의 난 때는 공주까지 어가를 호종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이서(李曙)의 종사관으로 군병을 모집하였고, 1632년 풍덕군수에 이어 한성서윤·양양부사 등을 역임하고, 1636년 공조정랑을 거쳐 청도군수·인천부사·나주목사를 지냈다. 어버이를 효도로 섬겼고 거관(居官)에 청렴하였으며, 친구를 신의로 사귀고 남이 급할 때 도와주기를 좋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