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익(聖益). 형조판서 이선부(李善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흠(李友欽)이다. 아버지는 이해주(李海柱)이며, 어머니는 성치중(成致中)의 딸이다.
1765년(영조 41) 유학으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한림 선발 시험에 뽑혔다. 이후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 무신란(戊申亂: 이인좌의 난)을 기록한 『유곤록(裕昆錄)』을 폐기할 것을 주청하였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추자도(楸子島)에 위리안치되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서용되어 사간원헌납·사간, 사헌부장령, 홍문관교리 등을 지내면서 시파(時派)의 입장에서 김구주(金龜柱) 등을 성토하였다.
다음해에는 민간에서 상투를 과도하게 높게 하고, 사치가 지나친 풍속을 다스릴 것을 건의하였다. 1784년 당상관에 승진하여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한때 이겸빈의 상소문이 문제가 되어 반대파의 탄핵을 받았으나, 1794년 서용되어 양양부사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