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백집(伯執). 이홍적(李弘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함(李壽涵)이다. 아버지는 이해로(李海老)이며, 어머니는 박수의(朴守義)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양성(權養性)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다음해 세자시강원사서, 그 다음해 정언이 되었는데, 이 때 왕의 견책을 받은 윤시동(尹蓍東)·이민곤(李敏坤)을 변호하다가 기장현에 유배되었다.
1758년 서용되어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이어 황해도에 어사로 나가 ‘생불(生佛)’이라고 자처하며 민심을 현혹시키고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던 무당 4명을 처형하였다. 그 해 시행한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고 몸가짐이 깨끗하여 명성이 있었다.
다음해 영춘현감으로 나가 백성을 구휼하고 환곡을 탕감하여 흩어진 민호를 다시 정착시켰다. 1760년 홍문관부수찬으로 들어왔다가 영남 지방에 기우어사(祈雨御史)로 파견되었다.
이후 시강원사서를 거쳐 의주안핵어사로 나가 잠상인(潛商人: 법을 어기면서 몰래 밀매하는 상인)들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고 지방관들을 처벌하였다. 과천에 어사로 나가 내시들의 행패를 단속하고, 홍문관부교리·부수찬, 안변부사·사간원사간·사헌부집의·시강원보덕 등을 역임하고, 1776년(정조 즉위년) 대사간으로 승진하였다.
1782년 삼사의 관원들과 함께 합계하여 좌의정 홍낙성(洪樂性)을 탄핵하여 파직케하였다. 1791년(정조 15) 공조판서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