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8년(현종 9) 건립. 199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총높이 161㎝, 비신 높이 146㎝, 너비 56㎝, 두께 17㎝. 현재 비각(碑閣)에 보호되어 있다.
이경직은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후손으로 이항복(李恒福) · 김장생(金長生)의 제자이다. 1601년(선조 34) 생원 ·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605년 식년시와 증광별시에 잇달아 합격하는 등 뛰어난 자질을 보였으며, 그 뒤 승정원 · 시강원 · 홍문관 · 병조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광해군의 폐모(廢母)에 참여하지 않아 5년간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가 명군(明軍)이 철산군의 가도(椵島)에 주둔하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철산부사로 나아가 활약했고, 인조 때에는 의주부윤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에 전라도절도사로서 왕을 호종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말년에 병중의 몸으로 강화유수(江華留守)로 나아갔다가 임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 후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효민(孝敏)이다. 비문에는 이러한 그의 생애와 공로가 기술되어 있는데, 비문은 셋째 아들인 영의정 이정영(李正英)이 짓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