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산(丹山: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이며, 자는 거화(去華)이다.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안변판관이 되자, 사재를 내어 민부(民賦)를 대신하는 등 공적이 있어 사의서승(司儀署丞)으로 승진되었다가 뒤이어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왕의 외척에 관련된다고 하여 최충헌(崔忠獻)이 오랫동안 등용하지 않으므로, 아버지 이상재(李尙材)가 최충헌에게 뇌물을 바쳐 감문위장사(監門衛長史)가 되었다. 고종 초 예부낭중(禮部郎中)으로 조충(趙冲)의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어 적을 사로잡는 계책을 세워 적중한 것이 많았으며, 1219년(고종 6) 10월 의주 별장(義州別將) 한순(韓恂), 낭장 다지(多智) 등이 의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선무사(宣撫使)가 되어 공을 세웠다.
뒤이어 비서소감(秘書少監)이 되었고, 경상도안찰사·전중감(殿中監)을 거쳐 1222년 12월 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이 되었다가 대사성이 되었고, 1224년(고종 11) 세상을 떠났다. 고려 문학계의 중진으로 특히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