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의용대장, 임시정부 통림총관소 총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기술(己述)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0년(고종 7)
  • 출생지평안북도 자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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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의용대장, 임시정부 통림총관소 총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기술(己述). 평안북도 자성 출신. 190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항전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뒤 일본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유하현(柳河縣)에 설립된 독립군간부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분교를 칠도구(七道溝)에 설립, 그 분교장이 되어 독립군간부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평안북도 자성·강계·후창군 등 한만국경지방에 독립군을 파견하여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용대장에 취임하여 백광운(白狂雲)과 함께 임강현(臨江縣)을 근거지로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1923년 11월 사령관의 명을 받고 대원을 인솔, 국내에 진입하여 평안북도 구성산에 주둔 중 일본경찰대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여 일본경찰 2명을 사살하였다.

1924년 6월 재차 입국하여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동에서 일본경찰과 교전하였다. 1927년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의 제6행정구위원장(第六行政區委員長)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임시정부 통림총관소 총관(通臨總管所總管) 및 강계군·자성군·후창군의 통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3년 봄 자성군에서 일본경찰과 교전하여 3명을 사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2)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한국독립운동사』4(국사편찬위원회, 1968)

  • - 『독립신문(獨立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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