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경연시독관,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다음해 식년문과에 응시하여 을과로 급제하였다. 경종 즉위 후 세자시강원설서,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을 지내면서 노론 4대신과 그 일파를 탄핵하고 논죄하였다. 홍문관의 수찬·교리, 사간원정언, 경연시독관을 역임하였다.
영조가 즉위하자 노론측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되었다가 곧 변경으로 유배되었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소론이 등용되자 홍문관수찬으로 복직되었다.
이후 교리·응교, 사간원정언·헌납을 거쳐, 1728년 무신란(戊申亂: 이인좌의 난)의 진압에 힘쓴 공으로 당상관에 승진되고 승지로 제수되었다. 오랫동안 승지를 지내며 영조의 측근에 있다가, 1732년 잠깐 삼화부사로 나간 적이 있었다. 승지로 있을 때 청렴한 관원들을 추천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건의하여 시행케 하였다.
1734년 죄인을 추국한 문서 『사변일기(事變日記)』를 누설한 혐의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후에 서용되어 대사간·도승지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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