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경일(擎日), 자는 경장(暻長), 호는 사류재(四留齋). 경상북도 경주 출생. 아버지는 이작우(李作雨)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주환(權周煥)의 딸이다.
1850년(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1859년에 성균관전적, 이듬해에 사간원정언을 거쳐 경기도사가 되었다. 1861년 사헌부지평을 지내고 이듬해 황산현령이 되었는데, 임지에서 간리들을 엄하게 다스려 부정을 뿌리뽑았으며 외역(外驛)의 폐단을 엄중 단속하고 토호들의 토색을 금지시켰다.
2년 뒤 다시 내직으로 승차하여 1869년(고종 6) 사헌부장령이 되고, 1872년 정언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76년에 큰 흉년이 들어 고을 백성이 굶주리자 봉급을 털어 구제하였다. 1900년 홍문관시독(弘文館侍讀)을 지내고, 1903년 통정대부가 되었다. 만년에는 향리에서 후진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사류재집』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