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채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경산(庚山), 우정(宇精)
  • 공삼(公三)
  • 이칭규보(圭輔), 동아(東啞)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94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4년(고종 21)
  • 출생지경기도 포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광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이규채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이규채 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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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규보(圭輔). 자는 공삼(公三), 호는 경산(庚山)·동아(東啞)·우정(宇精). 경기도 포천 출신. 이철영(李喆榮)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8∼1910년까지 청성학교(靑城學校)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3·1운동 이후 창신서화연구회(創新書畫硏究會)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남녀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4년 임시의정원의 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의 정치부위원 겸 군사부참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32년 총무위원장이 되었다.

1933년 중화민국 길림육군(吉林陸軍) 제3군의 상교참모(上校參謀)가 되었으며, 1934년 신한독립당감찰위원장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음해 9월 25일 상해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1940년에 가출옥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단군전봉건회(檀君殿奉建會) 부위원장을 비롯, 반탁국민연맹회 상무위원, 미소공동회의 대책국민연맹 대표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대회장, 대종교총본사 경의참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2(국가보훈처, 1986)

  • - 『독립운동사』4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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