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벽성 출신. 1915년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징역 5년형을 받고 복역중 1918년 탈옥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입단하고, 1920년 국내파견대장 이명서(李明瑞) 인솔하에 8명의 대원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황해도 송화군 구월산을 근거로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각지에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조직을 확대하면서 일본군경과 수시로 교전하였다. 이해 8월 친일파이며 독립운동을 방해하던 은율군수 최병혁(崔炳赫)을 총살하여 친일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을 탐지한 밀정이 신천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일본경찰에 포위를 당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대장 이하 6명의 대원과 함께 전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