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창호(李昌鎬). 자는 경로(景魯).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7대손이며, 정언 이승규(李承圭)의 아들이다.
1864년(고종 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주서(注書)·사성 등을 지냈다.
1868년에 이창호(李昌鎬)에서 이기호(李起鎬)로 개명하였다.
1869년 상호도감(上號都監)의 도제조 이하를 시상할 때 집례(執禮)로 가자(加資)되었고, 수릉(綬陵)·경릉(敬陵)·광릉(光陵)·휘경원(徽慶園)의 친제시(親祭時)에도 역시 집례로 가자되었으며, 전한으로 옥당(玉堂)의 연차(聯箚)에도 참여하였다.
1881년 좌부승지가 되었다가 죄를 얻어 문경현으로 잠시 유배되었으며, 곧 방송되어 이듬해 가례도감(嘉禮都監)의 전교관(傳敎官)으로 가자되고, 이어 진하사은 겸 세폐사(進賀謝恩兼歲幣使)의 부사로 선임되었으나 병으로 인하여 민종묵(閔種默)이 대신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5년 감시(監試)의 시관을 역임하고 1887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889년 호군·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내고, 이듬해 상책보급진하시(上冊寶及陳賀時)에서 대거승지(對擧承旨)로 가자되었다.
1899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며, 1902년 비서원승(秘書院丞)을 거쳐 장례원경(掌禮院卿)에 임명되었다. 1904년에는 박정양(朴定陽) 등과 함께 산릉도감(山陵都監)의 당상을 맡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