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군수(君受), 호는 탄초(灘樵). 이악진(李岳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연(李演)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병모(李秉模)이고, 어머니는 심관(沈鑵)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음보로 관직에 나가 부사과를 지낸 뒤, 1805년(순조 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등록되었다.
직각·부교리에 이어 1809년 선교관(宣敎官)을 거쳐 1812년 보덕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15년에는 원소제조(園所提調)를 거쳐 1818년에는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819년에 대사헌·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진하정사(進賀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20년 예조판서에 이어 한성부판윤·좌부빈객(左副賓客)을 겸하였다.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갔으나 임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