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강원감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 인조반정으로 등용되어 전적에 임명된 뒤 예조좌랑 겸 춘추관의 기주관과 지평(持平)을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공조정랑으로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어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하였다.
1632년 부수찬으로서 왕세자 가례(嘉禮)를 잘 수행한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1634년 우부승지로 있을 때 강석기(姜碩期) 등과 인조의 사친(私親)인 원종(元宗)의 입묘(入廟) 논의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연산에 귀양갔다가 1636년에 풀려나 승지가 되었다.
이듬 해 좌부승지로 관서 지방에 무재(武才) 시험관으로 갔다가 병자호란을 당해 부득이 돌아오지 못하고, 영북(嶺北)으로 가 여러 도에 격문을 보내고 격려하다가 이듬 해 돌아와 승지가 되었다. 그 뒤 이조·형조의 참의와 여러 차례의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호란 후 청나라의 갖은 횡포가 심해지자, 표면상으로 그들을 위문한다는 명목으로 적진에 들어가 정황을 살피고 돌아왔다. 1641년 한 때 강원감사로 나갔으며 이조참의로 있다가 죽었다. 좌찬성으로 추증되고 청주의 국계사(菊溪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음집(淸陰集)』
- 『사마방목(司馬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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