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숙종 5) 12월 우습유(右拾遺)가 되었고, 1108년(예종 3) 10월 요(遼: 契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천흥절(天興節)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1110년 5월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서 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의 패군죄(敗軍罪) 탄핵에 참여하였으며, 1112년 8월 명의왕태후(明懿王太后)가 죽자 전중감(殿中監)으로서 고애사(告哀使)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다.
일찍이 김인존(金仁存)·박승중(朴昇中)·최선(崔璿)·이재(李載) 등과 함께 음양지리의 제서(諸書)를 산정(刪定)하여 왕에게 올리자 『해동비록(海東秘錄)』이라 이름하여 하사하였다. 또, 박승중·이재·박경작(朴景綽)·김황원(金黃元)·최선 등과 함께 상정관이 되어 예의에 관한 것을 제정하였고, 『숙종실록』을 편찬하여 그 공으로 호부시랑이 되었다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이르러 1124년(인종 2) 3월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