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양 출신. 1907년 9월 일제의 침략이 가중되어 국운이 위태로워지자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이갑(李甲) 등과 항일민족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를 결성하였다. 1909년 기독교 장로로 신민회의 방계기관인 자기회사(磁器會社)를 평양에 설립하여 민족산업의 육성을 도모하였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민족운동지도자를 탄압하기 위하여 총독암살음모를 꾀하였다고 조작하여 일제히 검거령을 내려 123명을 체포할 때 함께 붙잡혔다. 이들 중 105명이 재판에 회부될 때 징역 6년을 언도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1922년 민족경제자립을 위하여 일본상품불매운동 및 국산품애용운동을 목적으로 한 조선물산장려회를 평양에서 조직하여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이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