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울산부사, 사헌부집의,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지국(持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4년(현종 15)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울산부사|사헌부집의|홍문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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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울산부사, 사헌부집의,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지국(持國). 이심(李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관징(李觀徵)이다. 아버지는 이옥(李沃)이며,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에 울산부사로 재임할 때 어사 박문수(朴文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사헌부집의에 제수되었다. 이 때 경연의 연혁을 글로 써서 올렸으며, 『숙종보감(肅宗寶鑑)』에 방례(邦禮)의 한 항목을 재록(載錄)할 것을 요청하였다.

같은 해 홍문관의 교리·수찬의 후보자를 천거하였는데, 11명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어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숙종 때 있었던 기사년의 일[기사환국(己巳換局)]을 두둔하다가 격노한 영조에 의해 제주도에 유배되었는데, 1732년 감형되어 출륙(出陸: 육지로 나감.)이 허용되었을 뿐 이만유의 석방을 요청한 상소는 영조로부터 거부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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