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지국(持國). 이심(李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관징(李觀徵)이다. 아버지는 이옥(李沃)이며, 어머니는 이동규(李同揆)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에 울산부사로 재임할 때 어사 박문수(朴文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사헌부집의에 제수되었다. 이 때 경연의 연혁을 글로 써서 올렸으며, 『숙종보감(肅宗寶鑑)』에 방례(邦禮)의 한 항목을 재록(載錄)할 것을 요청하였다.
같은 해 홍문관의 교리·수찬의 후보자를 천거하였는데, 11명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되어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숙종 때 있었던 기사년의 일[기사환국(己巳換局)]을 두둔하다가 격노한 영조에 의해 제주도에 유배되었는데, 1732년 감형되어 출륙(出陸: 육지로 나감.)이 허용되었을 뿐 이만유의 석방을 요청한 상소는 영조로부터 거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