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명천 출신. 1910년 국권강탈 이후 만주 용정(龍井)에 들어가 동명중학교(東明中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여 제1남지방경호부 제3대파장(第一南地方警護部第三大派長)이 되어 간도 화룡현(和龍縣) 칠도구(七道溝) 4개동에서 동민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국민회본부에 보내고, 칠도구에 지회를 설치하였다.
그 해 함경북도 무산군 강치근(康致根), 부평군 방낙선(方洛先)·황재룡(黃在龍) 등의 집에서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며, 장두량(張斗良) 등과 함께 일본관헌의 밀정 김응학(金應學)을 살해하였다.
같은 해 10월 동만주의 간북대한의민회(墾北大韓義民會)·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이 병합하여 임시정부의 지도감독을 받고 총판부(總辦部)를 조직하였을 때 참사(參事)가 되었다. 1921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옥사하였다.
1995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