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질보(質甫), 호는 나암(羅菴). 증조는 이극명(李克明)이고, 할아버지는 이인봉(李獜鳳)이며, 아버지는 이국(李菊)이다.
1462년(세조 8) 진사에 합격하고, 1469년(예종 1) 교수로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72년(성종 3)에 『예종실록』을 수찬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1482년 사옹원첨정에서 성균관사성으로 전임되어 유생교육에 몰두하였다. 그간 타직으로 전임한다는 말이 있을 때마다 여러 관아에서 유생교육에 최적임자라며 전임을 반대하여 20년 간 그 자리를 지켰다.
1493년 성균관유생 박광영(朴光榮) 등이 유생의 스승으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며 많은 인재를 길러내었으니, 그 문하에서 조정의 대부(大夫)들과 임금께 경서(經書)을 가르치는 경연관이 많이 있음을 들어, 포상할 것을 상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특명으로 한 품계 올려 포상을 받았다. 79세에 유해라도 고향에 묻히기를 빌어서 조정을 떠났다. 벼슬이 성균관대사성에 이르고, 용궁(龍宮)의 기천서원(箕川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