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사옹원첨정,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72년(성종 3)에 『예종실록』을 수찬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1482년 사옹원첨정에서 성균관사성으로 전임되어 유생교육에 몰두하였다. 그간 타직으로 전임한다는 말이 있을 때마다 여러 관아에서 유생교육에 최적임자라며 전임을 반대하여 20년 간 그 자리를 지켰다.
1493년 성균관유생 박광영(朴光榮) 등이 유생의 스승으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며 많은 인재를 길러내었으니, 그 문하에서 조정의 대부(大夫)들과 임금께 경서(經書)을 가르치는 경연관이 많이 있음을 들어, 포상할 것을 상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특명으로 한 품계 올려 포상을 받았다. 79세에 유해라도 고향에 묻히기를 빌어서 조정을 떠났다. 벼슬이 성균관대사성에 이르고, 용궁(龍宮)의 기천서원(箕川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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