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지윤(志尹), 호는 사병(四屛). 이자(李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약수(李若水)이다. 아버지는 공조참의 이홍(李洪)이며, 어머니는 원계채(元繼蔡)의 딸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556년(명종 11)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61년 강원도도사가 된 이래 오랫동안 외직을 역임하였다. 1566년 풍덕군수로서 이 군의 민폐를 열거하면서 국가행정 전반에 걸친 개혁을 요구하는 장문의 소를 올렸다.
1576년(선조 9) 일시 사성이 되었으나 곧 외직에 나갔고, 임진왜란 중에는 안주·양주의 목사를 역임하다가, 1598년 호조참의가 되어 전라도에 파견되어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웠다. 기묘사림파 이약빙(李若氷)의 손자인 관계로,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외직으로만 돌아 중용되지 못하였으나 지방 통치에서 민심을 얻어 명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