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할아버지는 이상욱(李尙煜)이고, 아버지는 이기숭(李基崇)이다. 어머니는 김주(金霔)의 딸이다. 충주에서 살았다.
1813년(순조 13)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19년 승문원박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 1822년 홍문관의 교리·수찬을 임명하기 위하여 만든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수찬(修撰)·교리를 임명하기 위한 제1차 추천기록)에 오르고, 1826년 권점(圈點) 4점으로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교리(敎理)·수찬을 임명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2차 추천기록)에 등록되었다.
1829년 세자시강원문학을 제수받고, 예식절차를 맡는 임시벼슬인 예모관(禮貌官)에 임명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자(陞資: 품계가 오름.)되었다. 1831년 홍주목사로 재임 중 이양선(異樣船) 한 척이 홍주의 고대도(古代島)에 정박하자,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영국이 배로 무역의 길을 트기 위해 온 것을 알아내어 정부에 보고하는 민첩함을 보였다. 그 뒤 1835년(헌종 1) 대사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