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의(士儀). 이중하(李重夏)의 아들이다.
1889년(고종 26) 경무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1년 대교권(待敎圈)을 거쳐 1894년에 홍문관부교리가 되었다.
1897년 사례소(史禮所)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08년 9월에 당시 대편찬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국조보감(國朝寶鑑)』의 찬집(纂輯)·선사(繕寫)·감인(監印) 위원으로 임명되어 2년 동안 『국조보감』의 편찬사업에 진력하였다.
1909년에 규장각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9월 정만조(鄭萬朝)·김윤식(金允植)·김학진(金鶴鎭)·박제순(朴齊純)·김덕한(金德漢)·김교헌(金敎獻) 등과 함께 만 1년 동안의 찬집 노력 끝에 『국조보감』 편찬사업을 성공리에 완수하였다. 그해 10월 『국조보감』 찬집에 기울인 공을 인정받아 서훈4등 태극장(太極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