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태경(台卿), 호는 종산(鐘山). 이진흥(李普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종호(李宗祜)이다. 아버지는 이재익(李在翼)이며, 어머니는 유한철(兪漢哲)의 딸이다.
1834년(순조 34) 사마시에 합격하고,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주서가 되었다. 『행관록(行館錄)』에 기록되었으며 1845년에 도당회권(都堂會圈) 23인에 선발되었다. 이듬해 부사과가 되어 진전작헌례(眞殿酌獻禮)에 참가하여 시상을 받았다.
1850년(철종 1) 평안도암행어사로 내려가서 민정을 살피고 탐관오리를 징계하여 국권의 위엄을 보였다. 1855년 좌부승지가 되었으나 대사헌 이경재(李經在)와의 논쟁 때문에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
1860년 대사성이 되었고, 1862년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났을 때 경상도선무사가 되어, 영남 지방의 민심을 수습하고 관련된 관리들을 징치하였다. 1864년(고종 1) 함흥부안핵사가 되어 흉흉한 북방의 민심을 무마하고 부세(賦稅)와 호역(戶役)을 경감하여 회유하였다. 이듬해 예조판서가 되었다. 저서로는 『종산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