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진사 이최선(李最善),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기대(李箕大)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9년(고종 26)에 백의(白衣)로 왕궁에 나아가 대책(對策)으로 천하의 이병(利病)에 대하여 진술했고, 1884년 동학란(東學亂) 때, 이승학을 지명하여 죽이려하자 방장산(方丈山)으로 피신했다. 이듬 해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금성산(錦城山)에 제사를 지내면서 국조(國祚)의 융성을 빌고, 진(陣)을 광주(光州)로 옮겨 서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 때 조정에서는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보내 상감의 명령으로 효유(曉諭: 알아듣게 타이름)하였으므로 그 날로 군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승학은 당시 성행하던 이기설(理氣說)의 학문보다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청고집(靑皋集)』 4권이 있고, 『종사유록(宗事遺錄)』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