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善迂堂). 본관은 영천(永川). 안동 출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이덕홍(李德弘)이며,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서 13, 14세에 경사(經史)를 통달하였다. 이 때 아버지의 도(道)를 굽혀서까지 명예를 따르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들어, 벼슬할 것을 단념하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이시의 글 중, 사람이 순풍에 돛을 단다면 험한 길도 쉽게 갈 수 있지만, 출발을 잘못하여 폭풍우를 만나면 배는 뒤집히고 사공은 익사한다는 국문시조 「조주후풍가(操舟候風歌)」가 유명하다.
만년에 오천(迂川)의 하류에 오계서당(迂溪書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학자들을 길러내었다. 이시의 학행을 흠모하여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는데, 그것을 기록한 『오계서당동화록(迂溪書堂同話錄)』이 있다. 친상 중 집상하느라고 병을 얻어 죽었다. 뒤에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에 추증되고, 오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선우당일고』 2권이 있다.